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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천경사 ]수원 주지 스님/ 칼럼 - 지혜로운 삶
평상심이 곧 "도"이다
최남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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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8/27 [16:4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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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무척이도 덥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국이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요즘의 더위는 나에게 옛 선인의 지혜를 엿보도록 충동시킨다. 그 중에 중국의 선종사에서 ‘조동종’의 개산조인 동산 양개화상(807~869)의 여름나기 수행법을 생각해 본다.

어느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더군다나 절간은 산 속이라 추위가 한층 더했다. 바깥에는 몸을 떨다가 온 제자 하나가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추위나 더위를 어떻게 피하면 좋겠습니까?” 동산스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야 추위도 더위도 없게 하면 될게 아니냐.” 누가 몰라서 묻나?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렇지. 이 때 제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그러면 추위도 더위도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동산스님 왈 “추울 때는 자신을 더욱 춥게 하고 더울 때는 자신을 더욱 덥게 하면 되지.” 이러한 말에 제자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런데 자연을 이기는 법이 있겠는가? 자연을 이기는 법! 물론 있다. 그리고 간단하다. 자연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연에 맞서서 힘겹게 싸워 이기려 하지 말고 즐기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더위도 잊을 수 있고, 추위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추운 겨울을 춥지 않게 지내려고 애쓰고 무더위를 시원하게 지내려고만 생각하는가?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고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이 아닌가. 겨울은 추워서 못살겠고 여름은 더워서 미치겠다고 엄살떨지 말고 마음을 돌려서 여름은 더워서 좋고, 겨울은 또한 추워서 좋다고 생각해보자. 모든 것을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지 않는가! 이기는 것보다 더 멋있는 것은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에 자연과 더불어 여름이 되고 겨울엔 추위와 함께 겨울이 되자! 모든 계절이 곧 나와 한 살림임을 생각하자. 이것이 바로 ‘물아일체’의 진리를 일상 속에서 자재하게 펼치는 삶이다.

이렇게 생각을 달리하여 마음을 돌려 보지만 현 사회적, 국제적 상황은 그렇지가 않아서 다시 더워지려고 한다. 지구촌 곳곳의 전쟁의 비극과 아프카니스탄의 인질사태, 한국에서 씨받이로 이용되었다는 베트남 여인의 아픈 사연, 구국의 결단이라는 선언들과 달리 정작 서민의 삶은 실종되는 대선 정국의 분위기, 물질만능의 풍조 속에서 양극화의 심화와 소외계층의 고통 등.

그래서 고개를 돌려서 다시 중국의 도오(道悟)스님(748~807)에게서 답을 찾으려 한다. 어느 날 숭신이라는 제자가 오랫동안 지극정성으로 스승인 도오스님을 섬기고 받들었는데도 별다른 가르침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평하며 스승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스님, 왜 저게는 가르침을 주지 않습니까?” 그러자 스승 도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놈아, 수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가르쳤더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이에 제자 숭신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쏘아 붙인다. “뭐라고요? 언제 저를 가르쳤습니까?” “허허, 이놈 봐라!” 스승 도오는 제자의 표정을 살피며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듯 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제자 숭신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스님, 대답을 해보십시요. 언제 저를 가르쳤단 말씀입니까? 저는 도무지 가르침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제자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쳐다보면서 스승 도오는 재미있다는 투로 말했다. “아, 이 녀석아. 네가 차를 가져오면 마셔주었고, 밥을 가져오면 먹어주었고, 인사를 하면 머리를 숙여 응대해주지 않았더냐.” 제자 숭신은 어리둥절해졌다. 스승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흡사 자기를 놀리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설마 스승이 제자인 나를 데리고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니겠지?’하고 제자 숭신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 스승 도오가 정색을 하고 무섭게 나무랐다. “이놈아,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 생각하면 곧 어긋나는 것이야! 있는 그대로 보란 말이야!” 이 호통에 제자 숭신은 퍼뜩 깨치게 되었다.

그렇다. 있는 그대로 보자! 도색과 포장으로 얼룩진 갖가지 지식을 동원해 분별하는 생각에 잠기면 점점 깨달음에서 멀어질 뿐이다. 스승 도오는 ‘평상심이 곧 도이다.’라는 가르침을 제자 숭신에게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졸리면 잠을 자는 일상생활 그 속에 참다운 도가 있다. 그런데 자칫하면 이 말은 오해하기 쉽다. 나쁘게 가면 그저 되는 대로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새겨보자. 물은 아래로 흐르고, 뜨거운 것은 위로 솟고, 늙으면 죽고, 죽으면 썩고, 그래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 평범한 이치를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것. 그 속에 바로 진리가 있지 않겠는가. 도오의 가르침은 순리에 역행 말고 자연과 합일하여, 그리고 마음을 아래로 놓고 살아가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런데 욕망에 사로잡힌 우리의 현실은 뜬구름 같은 부귀를 잡으려고 허공의 풍선처럼 자꾸만 떠다니는 것만 같다.

우리 모두 동트는 새벽의 창가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과 사물과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의식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었으면 한다.


도움말 : 천경사(天鏡寺) 주지 수원(修願)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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